"2차 피해는 국가가 입혔다"…'돌려차기' 피해자의 눈물

입력 2023-10-14 09:28  



"1차 피해는 가해자에게 직접 받았을지 몰라도 2차 피해는 '국가가 입히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2022년 5월 22일 새벽, 부산 중심가 서면에서 일면식 없는 남성으로부터 무차별 폭행당한 이른바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A씨가 법무부 국정감사를 앞둔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한 대답이다. 질문은 "A씨에게 그동안 국가가 어떤 존재였냐"였다.

지난 1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무부 국정감사장에서는 조 의원이 피해자 A씨와 인터뷰한 약 1분 분량의 영상이 재생됐다. A씨는 "지난 1년동안 제가 심판을 받는 느낌이었던 것 같다. 저는 어떤 센터랑도 연결되지 않았고 범죄피해 구조금 자체도 직접 제가 신청하고 다녀야 했다"며 "혼자 이걸(센터를) 찾아가려고 애를 썼는데, 마치 이 세상에 범죄 피해자는 나 혼자만 있는 것 같고, 표준화된 가이드라인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법무부 장관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묻자 A씨는 "너무 가해자를 벌하는 데만 중심을 두고 있다. 왜 범죄 피해자를 위한 복지가 잘 이뤄지고 있지 않은지에 대해 굉장히 의문이 든다"며 "가해자의 권리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권리를 챙기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아무도 피해자한테 오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현안을 검토하는지 제발 물어보고 싶다"고 호소했다.

자리에 앉아 A씨의 육성을 들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한 장관은 "피해자의 편에 서서 피해자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는 말씀에는 100% 공감하고 아무리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 같다. 많이 부족하다고 느끼셨을 것 같은데 그 점에 대해 제가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면서 "가해자를 벌하는 것도 피해자의 편에 서는 것이다. 가해자를 적확하고 강력하게 벌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 부분도 더 잘하겠다고 말씀드린다"고 했다.


이처럼 최근 국회에서는 A씨가 지적한 미흡한 범죄 피해자 보호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유의미한 논의가 이뤄졌다. 법사위원들은 마치 A씨의 호소에 답하듯 움직였다. 먼저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A씨가 "직접 찾아다녀야 했다"고 토로했던 '범죄피해자 구조금' 문제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이는 범죄로 사망한 피해자의 유족이나 장해·중상해를 입은 피해자에게 국가가 가해자를 대신해 구조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박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범죄피해자 구조금 지급 현황'에 따르면 2023년 8월 기준 87건으로, 범죄피해자 보호법 적용 피해자 수의 0.03%에 그쳤다. 또 지난해 기준 범죄피해자 지원 기금은 1137억원이었지만, 지급된 구조금 총액은 95억원뿐이었다. 제도에 대한 안내 시스템이 부족하고, 신청 과정이 복잡해 많은 피해자에 대한 직접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는 게 박 의원의 지적이었다.

이에 박 의원은 국감장에서 법무부에 '피해자 지원 안내 시스템 개선'과 '복잡한 지원제도 서류 간소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질의했다. 또 범죄피해자 지원금 신청 서류 작성 항목 중 '사건 내용'과 '가해자 정보'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며 소득증명원, 중상해 의견서, 진단서, 영수증 등의 많은 필요 서류가 피해자나 유족에게 또 다른 가해를 입힐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에 한 장관은 "절차를 간소화할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또 A씨는 지난 6월 "가해자가 자신의 주소를 알고 있고 보복을 예고했다"고 전하면서 법원이 사건 기록 열람을 허가하지 않아 기록 확보를 위해 민사 소송을 진행했다가 주소·주민등록번호 등이 노출된 것 같다고 주장한 바 있다. 실제로 피해자 정보가 보호되는 형사소송과 달리 민사소송은 당사자끼리 신원을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 이 때문에 A씨는 지금도 불안에 떨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민주당 소속 또 다른 법사위원인 박주민 의원은 입법을 통해 제도 보완에 나섰다. 박 의원은 지난 5일 재판장이 사건 기록 열람·등사를 허가하지 않는 경우 불복절차를 도입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열람·등사를 신청한 소송기록이 피해자 본인의 진술이 기재돼 있거나, 피해자가 제출한 서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를 허가하도록 하고, 신청을 불허할 경우 그 이유를 신청인에게 통보하도록 하는 단서 조항을 신설한 것이다.

박 의원은 "부산 돌려차기 사건으로 인해, 피해자의 보복 범죄에 대한 불안과 피의자 신상 공개 요구 배경에 피해자의 알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현 사법 시스템의 문제가 다시 한번 확인됐다"며 "피해자는 가해자의 적정한 처벌에 가장 큰 이해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고, 피해자에 대한 적절한 정보 제공은 헌법이 보장하는 재판절차 진술권의 실효적 보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성폭력처벌법 위반(강간 등 살인) 혐의로 기소된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 이모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지난 9월 21일 확정했다. 이씨는 지난해 5월 22일 오전 5시께 부산진구 서면에서 귀가하던 피해자를 10여분간 쫓아간 뒤 오피스텔 공동현관에서 때려 살해하려 한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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